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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고트홀트 레싱의 현자 나탄

by 명작찬 2024. 1. 28.

현자 나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트홀트 에브라함 레싱의 현자 나탄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현자 나탄은 계몽주의 시대에 지어진 연극입니다. 종교적으로 평화적으로 반지의 우화가 유명한 작품입니다. 고트홀트 레싱은 1729년부터 1781년까지 살았고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독일 출신으로서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제 현자 나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등장인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인공인 나탄이 있고, 나탄과 친구인 알하피가 있습니다. 그리고 반지 우화로 친구가 되는 살라딘이 있습니다. 이 살라딘은 신전기사의 은인이고, 이 신전기사는 레하라는 아이를 불에서 구해줍니다. 그리고 나탄은 레하를 길러주는 관계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주교가 나오는데 나중에 대주교가 살라딘을 죽일 것을 명령하기도 합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나탄의 가치관이 비치는 글입니다. 나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달콤한 망상은 한창 더 달콤한 진실에 진리를 내주어야 해. 내 말을 믿게. 인간에게는 언제나 천사보다 인간이 더 좋은 법. 그러니 그 애의 천사에 대한 망상을 고쳐주었다고 자네가 나한테 화를 내진 않겠지? 여기서는 나탄의 가치관이 나옵니다. 종교보다 인간을 강조하고, 인간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신의 영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오늘날 인간 때문에 일어난 환경오염 같은 문제들을 신의 영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비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탄이 레하에게 말하는 장면입니다. 기적의 가장 위대한 점은 진짜 기적이 우리에게 그처럼 일상적으로 늘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야 한다는 거란다. 만약 그런 일상적인 기적이 없다면, 입을 딱 벌린 채 그저 유별난 것, 새로운 것을 좇는 아이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걸 사려 깊은 사람은 아마 기적이라 부르지 않을 게다. 이 장면은 레하에게 나탄이 주는 가르침이 보입니다. 기적은 신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에 의해서만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다면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기적이라 부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 것을 보고 저희들은 나탄의 생각을 배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합니다. 저희 모두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시간을 쓴다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위로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뒤에 계속 나탄이 이야기하는 것 중에 중요해 보이는 것을 말해보겠습니다.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보다 경건한 몽상에 빠지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리고 정신이 풀린 사람은, 때로는 그런 목적을 분명히 의식하지는 못해도, 단지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기 위해 경건한 척 몽상에 빠져들기를 좋아한다는 걸. 이 나탄의 이야기를 보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인간인 신전기사가 레하를 구해준 기적을 인정하고 감사를 표하는 것을 말하고, 몽상에 빠지는 것은 종교를 너무 과하게 믿어서 사람이 구했음에도 신이 자신을 사랑해서 구해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저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종교를 믿는 것도 물론 좋지만 사람이 좋은 일을 했다는 것까지 신이 한 일이라고 뺏어갈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나탄의 추가 설명을 위해 레하가 뒷부분에서 말한 것을 가져와본다면 레하는 하지만 신에 대한 귀의가 신에 대한 우리의 망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가르침은 많은 위안이 되었어요. 보모, 그건 아버님께서도 자주 해 주신 말씀이에요. 보모도 그 점에서 여러 번 아버님과 의견을 같이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아버님과 함께 세우신 걸 보모 혼자서 무너뜨리려고 하는 겁니까? 여기서 신에 대한 귀의가 있는 것과 신에 대해 망상을 하는 것은 관계가 없고, 보모는 레하에게 신이 기적을 행한 것이라 강요합니다. 신에 대한 망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나탄의 이야기가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뒤에 대주교의 비열한 모습이 나옵니다. 자신의 종교가 진리라 여기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광신도처럼 종교를 수단화하고, 하느님을 들먹이며 이기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신전기사는 유대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이 것은 타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 속에서 나탄은 서로 헐뜯어서는 안 되고,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나무도 저 혼자 땅 위에 우뚝 솟은 것처럼 뽐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무는 인간이 선택한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선택한 종교를 종교로써 다 인정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나무가 제일 우뚝 솟아있다고 뽐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탄의 가치관입니다. 종교 선택의 자율성을 존중해야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동등한 위치에 있고 우열을 가릴 것 없이 개인의 믿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종교에 대한 마음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어떠한 개인들이 종교를 믿고 종교생활을 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종교가 맞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면서 저에게 강요하는 것은 저도 반항심이 들곤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나탄의 가치관이 현재 저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속에 신전기사의 답변이 나옵니다. 그 교만 때문에요. 그 교만은 기독교인과 모슬렘에게 전이되어 오로지 자기네 신만이 옳은 신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이며 신전기사인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어리둥절하시지요? 좀 더 나은 신을 섬기고 있으며 그 신을 가장 훌륭한 신이라고 전 세계에 강요하는 종교적 미치광이 짓이 가장 어두운 모습이 여기서보다, 지금보다 더 극명하게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까? 여기서 이 현자 나탄의 극 배경은 십자군 전쟁 중입니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 중에 자신이 믿는 종교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교만은 유일신을 믿는 유대인들이 먼저 선민이라 자칭하며 헐뜯기를 먼저 시작했다고 생각한 신전기사의 생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나탄은 이런 와중에 반드시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나탄과 신전기사가 친구가 된 계기가 나타납니다. 이어서 종교이전에 인간이라는 같은 한 뿌리에서 시작된 것을 또 말해줍니다. 오늘은 이렇게 현자 나탄의 초반부를 이야기해봤습니다. 나탄의 가치관은 종교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고 종교가 있기 전에 우리 모두 인간이라는 뿌리에서 시작된 것을 강조했습니다. 기적은 무조건 신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또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뒤에 어떠한 이야기가 이어질지 다음에 다시 작성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