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 나탄
오늘은 현자 나탄의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마지막까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수사는 나탄에게 어르신보다 훌륭한 기독교인은 결코 없었다고 말합니다. 나탄은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복 받았어요. 수사님의 눈에 저를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제 눈에는 수사님을 유대인으로 만듭니다.라고 말합니다. 나탄은 기독교인을 증오했지만 기독교인인 레하를 자식으로 받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수사관은 나탄에게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보게됩니다. 그리고 또한 나탄이 수사관을 유대인으로 보게됩니다. 본인의 종교에 빗대어 서로를 선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나탄의 가치관과 잘 맞게 행동이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처럼 행동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느껴집니다. 그리고 신전기사가 레하의 진짜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낳았을지라도 역시 그 유대인이다, 영원히.라고 신전기사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탈피하는 순간이 나타납니다. 레하에게 보모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화했습니다. 어휴! 그 불쌍한 보모는, 말씀드렸잖아요, 기독교도인데 저를 사랑하는 나머지 괴롭히지 않을 수 없나 봐요. 신께로 나아가는 보편적이며 유일하게 참된 길을 안다는 망상에 빠진 광신자 가운데 한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모가 레하에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요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탄을 제외한 인물들의 행동에서 광신도적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나탄은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를 보고 그 애 눈물을 닦아 주는 게 제게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레하에게 다가가선 울었는지 물어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의 딸이라고 말해줍니다. 나탄의 종교를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나타나는 행동이었고, 기독교인 레하를 종교인이 아닌 사랑하는 자식으로만 보는 나탄의 모습입니다. 기독교인이 나탄의 가족과 자식들을 다 죽였지만 이를 절대로 기독교인을 묶어서 원망하지 않고, 레하는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으로만 보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이 현자 나탄이라는 작품이 유명하게 된 이유라고도 생각합니다. 뒤에 이어서 살라딘이 신전기사에게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런 식으로 어떤 선행을 놓고 떼쓴다면 그 선행을 무위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네가 살려냈다고 자네 소유물이 되는 건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탐욕이 나서 불 속에 뛰어드는 도적도 자네와 같은 영웅이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며 신전가사가 레하를 구해주었지만 선행에 대한 대가성을 바라고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저희들은 오늘날 선행에 대한 대가성을 바라는 행동이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 행동이 저 시대에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꼭 안된다는 말을 주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선행은 당연히 칭찬받아야 마땅한 행동이고, 선행이 좋은 행동이라고 믿는 이유는 사람은 원래 악하고 이기적인 것이기 때문에 선행으로 대가를 받으려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레하의 종교에 관한 생각이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신을 위해 싸운다고 하는데 신이 누구의 소유인가요? 한 인간의 소유가 되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싸우게 하는 신이란 대체 어떤 신인가요? 그리고 만약 자기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땅을 위해 태어났는지 어떻게 아나요? 이런 순수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방패로 세우고, 서로 싸우는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신전기사의 본성은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 만큼 인간적이고 선하지만 신전기사가 세상에서 맡은 역할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다른 종교를 배척하며 싸워야 하는 역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본성과 세상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수사의 말에 적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실 신전기사는 살라딘의 죽은 아우의 아들이었고, 신전기사와 레하는 남매 관계였습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며 유대교와 이슬람, 기독교에 흩어져 있던 각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화합하게 됩니다. 서로 세 종교로 나뉘어 갈등했지만 가족이라는 깨달음으로 사랑과 존중을 알게 됩니다. 살라딘은 이후에 신전기사에게 이 고집불통아, 이젠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또한 레하에게 싫든 좋든 이젠 내가 제안했던 대로 네 아비가 되었구나라고 말해줍니다. 이 말에서는 모든 종교와 인간을 싫든 좋든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교훈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신전기사는 자신이 살라딘의 핏줄이라는 것을 알고 어렸을 때 사람들이 들려주었던 꿈같은 얘기들이 단순히 꿈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살라딘은 뭔가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저의 살해자로 만들려 했구나. 어디 두고 보자고 말하며 모두 말없이 포옹하며 끝이 나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각자의 종교적 진리와 이익을 위해서 서로를 죽이려 했던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화합하며 그저 인간으로서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깨어나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현자 나탄이 계몽주의 시대에 관련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저희 사회와 관련해서 생각을 해보자면 종교를 넘어선 인간으로서의 사랑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도 차별 없이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아동이나 비장애아동과, 노약자 같은 경우에도 이런 마음들을 가지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늘 레싱의 현자 나탄을 끝까지 이야기해 봤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작품을 가지고 글을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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