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세시대
오늘은 이슬람 제국과 신성로마제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럽 중세시대가 암흑의 시대였다면 그 시기에 아라비아 반도를 구심점으로 삼아서 원심력을 발휘한 이슬람 제국은 말하자면 최고의 문화적인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여기에서 문화적인 전성기란 이슬람을 기반으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학문과 정신과 기술적인 발전이 엄청나게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럽 중세시대와 이슬람 제국기를 비교해 보면 신과 인간의 관계와 작용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는 신과 교황과 인간의 위계가 수직적이었고 엄격했기 때문에 인간의 활동과 업적이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반면에 유럽 중세기에 이슬람 제국에서는 의학과 수학, 과학, 문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 인간의 정신적 능력이 많이 발휘되었습니다. 1400년 이슬람 문명의 길을 걷다 에는 이슬람 제국 1400년, 즉 무함마드 사망 시점 10여 년 전부터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1923년까지 이슬람 제국의 문명적 업적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유럽 중세에 해당하는 이슬람 제국의 문명적 유산을 면면이 살펴보면 중세 이후 유럽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 동쪽으로부터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서구 근대의 문명적 발전에 경도되어 유럽을 평가절상하고 비유럽을 평가절하한 우를 범한 것에 대해 성찰하고 서구 중심의 세계사 서술 방식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작을 고르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슬람 제국은 비잔티움 제국 동쪽부터 아바스 왕조의 수도인 바그다드와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인 다마스쿠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후우마이야 왕조의 수도인 코르도바가 있고, 메디나와 메카는 무함마드 시대의 정복지이고, 정통 칼리프 시대의 정복지는 카이로와 다마스쿠스와 바그다드와 메르프가 있습니다. 메르프 북쪽으로는 탈라스 전투가 751년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바그다드에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642년에 격파했습니다. 이슬람 세력은 프랑크 왕국과 당쪽으로 진출했습니다. 제국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군사력과 정치력과 경제력 등을 동원해서 주변국을 통치하고 통제하는 정체체제를 뜻합니다. 제국의 제1요건은 영토를 넓히는 것입니다. 이슬람 제국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사망 10년 전부터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1923년 까지를 말합니다. 우선 마함마드 시대의 정복지를 본다면 헤지라, 즉 무함마드가 고향인 메카에서 박해를 받고 메디나로 추방된 사건이 622년 경에 발생합니다. 이때는 아라비아 반도 전역을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에 이슬람 최고의 정치와 종교적 지도자인 칼리프가 이슬람 경전 코란에 입각하여서 이슬람 공동체를 통치한 초기 정통 칼리프 시대에 이슬람 제국의 정복지가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의 사산 왕조도 이 때 이슬람 제국으로 흡수되었습니다. 661년부터 750년까지 이슬람 제국을 통치한 우마이야 왕조 시대의 정복지는 정통 칼리프 시대보다 동서로 더 확대되었고, 750년부터 1258년까지 존속한 아바스 왕조 시대에는 이슬람 제국의 영토가 최대 규모였습니다. 이제 게르만 민족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중부 유럽의 다민족 영토 복합체인 신성로마제국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은 게르만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는 게르만족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게르만족과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데, 신성로마제국 중 가장 큰 국가는 독일 왕국이었는데, 독일 왕국의 왕들은 스스로 게르만인 왕이라고 칭합니다. 800년경 교황 레오 3세가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의 국왕 카롤루스 1세에게 황제의 관을 씌우고 서로마 제국의 부활을 선언했는데, 이때를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 사건 또는 962년경 독일 왕국의 오토 1세가 황제가 되어서 프랑크 왕국의 후계자임을 자처함으로써 서유럽 제국의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이때부터 신성로마제국이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용어는 13세기가 되어서 생겼지만, 제국의 황제가 로마 황제로부터 비롯된 최고 권력의 계승자로서 절대적인 주권을 소유한다는 의식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고, 원칙적으로 선거를 통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하지만 왕조를 이루는 과정에서 대개 특정 가문에서 황제가 계승되었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게르만족과 관련된 유럽중세시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에는 게르만족과 흉노족과 부르군트족이 존재하고, 기독교와 기사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니벨룽겐의 노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니벨룽겐의 노래는 5세기와 6세기경부터 전승되었고, 13세기부터 문헌으로 정착했습니다. 이 니벨룽겐의 노래의 등장인물은 크게 브룬 힐트와 크림 힐트가 나오고, 지크프리트와 군터 왕이 나옵니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영화와 책 다양하게 작품이 있는데 다움부터 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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